Camille Lee
언젠가 만나기로 한 연락은 언제나 오지 않는다.
나도 많은 약속들을 그렇게 공허에 부려놓고 지나왔으니, 섭섭함도 원망도 없다.
다만, 무료함 만큼의 아쉬움.
누군가에게도 내 그 약속들이 이런 아쉬움으로 남았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오히려 슬퍼진다.
차를 우려낼 수 있는 양껏 담궈두었다. 잔 벽에다가마저 짓이기듯 눌러 티백을 짜냈다.
향이 좋은 차였는데 떫고 미끈한 감촉만 남았다.
오늘 밤은 늦게 잠이 들 것이다.
연락이 오지 않는 모든 것들을 있는 힘껏 노려본다.
잠들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다.
마주할 상 없는 공복을 채우기엔 초라해지는 시간이다.
왁자지껄한 술자리에 편입해 흥겨운 거짓들을 다시 떠들기엔 멋쩍은 시간이다.
기약들이 나를 찾지 않는 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나의 책임도 아니다.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내 서툰 기대심 뿐이다.
당연한 인사들에 내 기대심이 쓸 데 없이 순진했을 뿐이다.
어쩌면 그것들은 인사만큼도 되지 않는,
그것은 나를 회피하기 위한 마지막 문장이었을 것이다.
내가 회피하기 위해 파종하듯 던져두었던 마지막 말들도 생각한다.
부정할 필요는 없이 반가운 인사들이었지만, 작은 거리를 공유하기엔 턱없이 불편했던 얼굴들을 생각한다.
그것을 먼저 할 수는 없다.
이 시간에 그들은 내 얼굴을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의 연락은 기습에 불과하다.
불편함을 비집고 들어가 그 초식동물들의 안정을 깨고 싶지 않다.
메세지를 발신했다는 표시의 숫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없어진다 하더라도
그들은 마침 다른 약속이 있거나,
마침 바쁘거나,
마침 잠에 떨어져 있을 것이다.
혹은 그저 답을 하지 않을 뿐이다.
나는 더 이상 초라해질 필요성을 아직 느끼고 있지 않다.
더욱 초라해질 수 있다면 기어이 나는 그 지나간 인삿말들을 재생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로 재생되어지지 않는 연락들을 생각한다.
누군가들은 내 생각을 너무 한 나머지 연락을 하지 못 하는 것이다.
아니면 아예 내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오히려 슬퍼진다.
이런 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여전히 잠이 들기엔 이른 시간이다.
새벽녘에 눈을 뜨기 쉬운 시간에는 아예 잠에 들지 않는 것이 좋다.
잠에서 깨 확인하는 메세지들은
아예 와 있지 않거나,
늦은 답장을 인삿말 만큼이나 공허하게 미안해하는 것들 뿐이다.
그럴 때는 다시 언젠가를 허세하는 인사를 웃음으로 보내고 초라함을 이불로 덮고 잘 수 밖에 없다.
늦은 답장을 보낼 때 내가 그러는 것 처럼,
어떤 애도를 표하면서.
방공호에 숨어, 연약한 초식동물이 된 척 해버리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