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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자들의 미래

 

 

        

 영화 「눈 먼 자들의 도시」는 시각능력을 상실케 하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을 통해 우리가 집착했던 우리 문명의 무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시각체계를 상실한 인간들이 다른 장애나 질병의 경우에 비할 수 없이 무기력해지고, 절망하며, 동물적 본능에만 충실해짐을 보여주어 우리가 정의하는 ‘인간성’의 실재적 의미까지도 돌아보게 한다. ‘보이는 자’는 절대적인 권력과 생존력, 이성적인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시력을 상실한 이들에게 자기 자신-인간-은 들개만도 못한 존재일 뿐이다. 시각이란 그만큼 인간에게 강력하고 중요한 구성적 요소가 된다.

      

 눈과 뇌의 화학적/물리적 연결 속에서 구성되는 시각은, 언어가 조직되던 선사에 벌써 그 중요성이 입증되었다. 언어의 휘발을 잡아둘 수 있는 문자의 등장은 그런 언어의 일회성을 보완할 수 있는 ‘시각의 권력화’로의 첫발이었다. 그러나 시각의 권력 요소에 문자가 전부는 아니다. 중세까지의 문자는 시각 이상의 권력을 가졌고(본다고 모두 아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 귀족성의 보완은 여전히 ‘이미지, 도상, 그림’ 등으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중세까지의 시각문화는 종종 이미지가 문자 텍스트에 종속되어 제작되기도 했지만, 이미지와 문자의 경쟁이 비등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보는 것’의 문화적 차이·계급성이 기표와 기의 개념을 함의함으로써 발생한 관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달 이후, 문자의 권력은 도상 이상으로 성장했으며, 이미지 이상의 함축성을 가진다는 이유로 통용되었다. 문자에게 설 자리를 잃게 된 이미지는 텍스트에서 벗어나 ‘예술’의 범주에 포함되었고, 다른 맥락의 시각 권력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하고 문자의 권력이 보이는 것(신문-이미지가 예술의 영역 궤도로 분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의)에서 들리는 것(라디오-초기 매스미디어 발생에서 언어가 시각체계보다 청각체계에 의존했던 일시적 움직임), 그리고 다시 보이는 것(TV!)으로 돌아왔을 때, 매스미디어의 등장으로 이미지의 위상은 예술의 범주뿐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맥락의 범주로 더 높게 재진입했다. 매스미디어 시대의 시각문화란, 넘쳐나는 도상과 이미지의 홍수로 오히려 그(실제세계의) 재현성에 대한 미디어적 특질을 망각하게 되었다.

        

 매스미디어의 시대가 확장되어 디지털 미디어의 영역이 확장되고 개척되는 시기의 시각문화는 결국 이미지의 승리가 되었다. 0과 1로 현실을 재현하는 디지털은 픽셀 하나하나가 곧 그대로 하나하나의 이미지의 분절이었다. 이미지들은 더 빠르고 민첩하게 모듈화되어 조합되고 재구성되었으며, 문자조차도 디지털 안에서 모듈화, 분절되어 픽셀들로 조립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미디어의 시각 문화는 원근법에 안주하던 시각 문화의 범위를 원근뿐만이 아닌(즉,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눈이 보는 그 자체의 재현에 집중함으로써 3D 입체기술의 환상까지 만들어 내었다. 이제 인간의 시각체계는 2D에서 전제했어야할, 상상했어야할 행간을 3D로 메꾸어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시각의 잔상’조차 권력이 되어 전체 감각의 ‘착각(이 착각은 시각의 신체지배로 부를 수도 있다)’을 노리는 것이다.

        

 「눈 먼 자들의 도시」는 끔찍하다. 우리가 당장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위에서 언급한 전체적 감각들에 대한 포기도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생각토록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미디어의 영향은 시각을 전지적 권력의 위치로 굳혀버린다. 3D 가 우리에게 주는 착각과 환상의 독을 인지하지 못하는 작금의 사태는 그 권력화의 일조일 뿐이다. 3D가 가지는 현실의 재현은 그래서 즐거우면서도 강력하다. 시각의 권력성을 이미 못박아버린 후에 그 권력을 미디어 스스로가 유희하고, 시각의 주체성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미디어가 가져갔기 때문이다. 과거의 시각문화가 메세지를 전달하는 기능으로서 청각체계(혹은 청각문화)의 한계를 넘어 그 대신 자리를 잡았고(물론 그 안에서도 문자와 이미지로 양분되어 그 둘 사이의 경쟁이 있어왔지만), 또 지각체계 중에 시각보다 권력적인 감각은 없었었지만, 지금의 시각문화는 인간 자신에게 있어서 스스로 독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이다. 실재의 눈으로 실재의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화 된 눈으로 재조망 된 사회를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각 없이는, 우리는 디지털과 그 이후 기술들의 등장 때마다 주체성을 잃고 미디어화 되어버린 눈으로 ‘착시’만을 좇으며 살아가야 한다. 보다 자극적이고 실재적인 그래픽 안에서 설명되는 오늘날의 시각문화는 이미 픽셀 밖의 이미지는 분간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실명한 환자들에게 보이는 것은 새하얀 빛뿐이다. 그들의 실명은 왜 보통의 시각장애 환자들이 보는 암흑이 아니라 새하얀 빛뿐인지, 우리가 착시하고 있는 오늘날 시각문화의 밝은 면이 사실은 시각의 무위화는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영상 문화의 이해' 2009/2 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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