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 나는 우울증을 핑계로 거의 모든 일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푼돈벌이나 되던 원고나 간간이 해왔던 번역 일들은 이미 몇 주 전부터 받지 않았고, 학교 수업도 나가는 둥 마는 둥 하며 방학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잡지사나 출판사의 아쉬운 소리나 교수들의 경고에 몹시 수척해진 목소리로 '저... 제가 요즘... 우울증 때문에...'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되는 간단히 처리되는 일이었다. 그러면 그들은 잔소리를 그치고, '아...' 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마음의 감기'니, 흔한 증상이니, 자신 주변의 누구도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느니(심지어 자신도 우울증을 겪고 있다며 하소연을 시작하는 교수도 있었다) 하면서 위로의 말을 던지고는 그럼 추후에 다시 보자며, 멋진 휴가를 보내면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적인 장담으로 대화를 끝내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은 들지 않았다. 나는 두서 없이 늘어놓은 일상들에 정말로 지쳐있었고, 편두통은 이제 만성이 되었으며, 계속 된 무기력에 정말 우울증이 걸리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이 빌어먹을 도시의 회색에도 신물이 났다. 세 명이 나눠 쓰는 작은 아파트의 내 방 창문에선 옆 건물의 비상계단과 붉은 벽돌 벽만 보인다. 만약 이 건물에서 불이 난다면 나는 현관을 이용해 이 건물을 빠져나가는 것보다, 창문 밖으로 손을 뻗어 저 비상계단을 타는 것이 더 나을 정도였다. 손바닥만한 창문마저도 이 모양이었다. 정말로, 나는 지쳐있었다. 나는 잡다한 일들이 없을 때면 보통,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짧은 글들을 쓰곤 했는데 무기력과 편두통에 그마저도 그만둔지가 꽤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창문만한 침대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누워 시간을 추측해보는 것이 소일이 되었다. 딱히 벗어날 수도 없었던 작은 방과 일상으로부터 나는 어디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고,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K에게 그의 고향 마을에 대해 들은 게 생각났다. A주의 소도시 W 외곽에 있는 K의 고향은 사람보다 소가 더 많은 목장지대로, 혹독하리만치 흥미로울 게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그의 가족들이 도시로 이사해 겪은 것들은 더 혹독했던 것 같지만) 겨울 옷 몇가지와 책 조금, 휴대용 타자기를 챙기고 방학보다 일주일 먼저 W시로 떠났다. K에게 그리로 간다는 메세지를 남겼지만, K가 메세지를 확인할 것 같지는 않았다.  W시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건 쉽지 않았다. 내가 W에 도착한 날은 드물게 눈이 많이 내렸고 마을로 들어가는 차편은 맑은 날에도 정기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차를 구할 수도 없었다. 하루를 더 머무르고서야 마을로 들어간다는 차를 얻어탔다. 마을에 사는 B씨가 마을에 가져가 팔 물건들을 싣고 마을로 돌아가는 트럭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잡화상을 하는 B씨는, 내가 마을 사람 하나의 친척쯤 되는 줄 짐작하고 있었지만, 나를 K의 친구라고 소개하자 굳이 이 작은 마을을 찾아온 이유를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조용한 마을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찾아왔다고 하니 꽤 반가운 눈치로 그곳에서 특별히 볼 수 있는 곳이나 작은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나에게 추천해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을 오르거나, 말을 타거나, 산책을 하거나 하는 농장지역 특유의 일과들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팔기 위해 트럭에 실린 물건들 조차도 별로 쓸모 있어 보이는 것들이 없었다. 전화 판매 카달로그나 술 몇 종류, 수의과의 약품들 몇 개 같은 잡다한 것들이 짐의 전부였다. K의 표현대로 이곳은 혹독하리만큼 흥미로울 게 없는 작은 마을이었고, 그래서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B씨의 가게 일을 도와주며 방 하나를 빌리기로 했다. 잡화상 겸 마을의 주점을 하고 있는 B씨의 가게를 낮 시간동안 봐주고, 그 외의 시간은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K의 가족과 친하게 지냈었다는 B씨는 K라도 그러했을 것처럼 그의 집 빈 방을 편하게 사용해도 된다고 했지만(B씨는 이 마을을 찾아 온 나에게 일종의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K가 보통은 학교 강의에 나오지 않고, 거의 늘 해시시나 술에 취해 있는다는 얘길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과도 오갈 수 있는 그 일이 나는 흡족했다.

 마을의 입구에는 2층짜리 건물들이 몇 있었고 그 건물들의 1층에는 빵집과 세탁소, 치과와 수의사 사무실 같은 것들이 있어 작은 읍내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나는 점점 더 이 시골마을이 마음에 들었다. B씨가 나에게 내어 준 2층의 방에는 지붕의 모양을 타고 내려 온, 내 아파트의 궁색한 창보다 두배는 더 큰 창이 있었고, 그리로 멀리의 산이나 농가 창고의 지붕 같은 것들이 탁 트인 채로 보였다. 창문만 내다봐도 슬그머니 그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물기 어린 건초 냄새와 간지러워 유쾌할 정도의 소음, 비포장 도로의 먼지 냄새 같은 것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마을이었다.

 마을의 사람들은 분주할 일 없는 휴일의 낮 시간을 B씨의 잡화점에서 보내고는 했다. 대부분 마을의 안쪽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온 사람들이었다. 손님이 많은 휴일이라고 해봤자 몇 잔의 차와 다과, 맥주와 약간의 술만을 내어가면 내가 돌볼 일은 끝이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모여 앉아 몇 십년 간이나 계속되었을 이야기들을 주고 받고, 나는 계산대 뒤에 앉아 그 사람들을 관찰해 메모를 남기거나 스케치를 하곤 했다.

 

 

 평일의 잡화점은 정말 딱히 할 일이 없었는데, B씨가 마을에서 실어오는 물건들을 진열하거나, B씨에게 주문을 넣었던 사람들에게 물건이 도착했단 연락을 주거나 하는 것들이 거의 다였다. 그럴 때면 나는 가게의 큰 창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고, 이 유서 깊은 안락함에 경의를 표하고는 했다. 그렇게 나 나름대로 이 작은 마을의 생활에 적응해나가고 있었을 때였다.

 

 

 가게 창의 안쪽 구석에는 발행일자가 지난 전화 주문 카달로그와 광고가 잔뜩한 무가지들이 한 데 쌓여있었는데, 그것들은 족히 10년은 넘었음직한 두께로 차곡차곡 높아져 있었다. 정 무료할 때는 그것들을 뒤져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광고 문구나 기이한 물건들을 보고 혼자 킬킬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 엉성한 종이 뭉치를 발견한 건 이 철지난 광고지들의 더미 속이었다. 설명도, 작가의 이름도 남아있지 않은 [Eight Cadences]라는 제목의 복사지 묶음이었다. 그건 책이라고 하기에도 브로슈어라고 하기에도 조악한 소책자였다. 여덟개의 작업들을 인쇄한 일종의 도록이었는데, 그 내용이란 것도 고작 세 컷의 스냅샷과 하나의 셀프 포트레이트, 두 쪽의 짧은 글과 낙서에 가까운 두장의 드로잉이 전부였다. 반으로 접힌 복사지를 중간에 스테이플러로 묶어두어서 특별히 정성스러워 보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표지로 만들어 둔 앞장엔 커피였는지 홍차였는지 모를 잔 바닥이 찍혀 인쇄면이 얇게 번져 있었다. 힘기 없는 복사지의 테두리는 닳아 구김이 가 있었고, 그 누추한 행색이 먼지 앉은 판매 카다로그 사이에서 얼마나 훌륭히 어울렸는지, 더미로 쌓인 그 안에 둔 채 하마터면 그대로 눈길 하나 주지 않을 뻔 했다. 수고스럽지만, 나는 카다로그의 지층 더미에서 그것을 빼 폐지로 버리려고 했었다. 무심결에 그것을 열어보지 않았더라면. 그 뒤에도 그럴 뻔했던 그 순간이 얼마나 아찔했던지.

 

 

 잔 바닥 때문에 인쇄가 번져있던 표지 다음의 페이지엔 거울을 보고 있는 여자를 찍은 스냅이 있었다. 푸른 빛, 물 속 같이 서린 빛이 그 황량한 사진에 돌았다. 선명한 색과 윤곽이 도드라진 물건 카달로그 속에서 거친 인쇄의 사진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창녀인지, 무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고 있는 동양인 여자.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사진 속 여자의 자연스러움은 되려 나를 긴장시켰다. 움푹 패인 눈두덩이, 높게 그린 눈썹에 여자는 무기력하고 퉁명해 보였고 이쪽으로 돌린 등엔 탄력있는 근육이 선명했다. 화려하지도 않고 오히려 낡은, 어두운 색의 슬립, 거울의 저쪽 면은 수은칠이 벗겨저 커다란 얼룩이 져 있다. 분장실 같은 사진 속의 공간은 조명도 없이 싸구려 플라스틱 바구니만이 어지러진 채 전부다. 천막 비닐로 만든 가방, 정돈 없이 늘어진 의상들, 갈퀴 같이 걸친 누군가의 손들이 조잡하게 여자의 주변을 장식하고 있었다.

 

 

 옆장엔 손으로 쓴 글씨가 복사된 문장이 몇 줄 휘갈겨져 있었다. "My works was all about homage, because I thought they were the most beautiful people I've ever met." "A lot of people seem to think that art of photography is about the way things look, or the surface of things. That's not what it's about for me. It's really about relationships and feelings. It's really hard for me to do commercial works. They don't understand that it's not about a style or a look or a setup. It's about emotional obsession and empathy."

 

 

 지난 몇 주 간 내가 글을 쓰지 않았었다는 게 새삼 떠올랐다. 이제껏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수준으로 글을 써서 팔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는 게 내 소박한 꿈이었다. 물론 내 글에 조금 더 여유로운 조건이 제시된다면 좋겠지만 지금껏 받았던 수입 정도로도 그렇게 곤란한 생활은 아니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내왔었다. 그렇게 그 지루함에 스스로 빠지고 말았던 게 내 문제였다. 모든 글들이, 심지어 단편적으로 남긴 메모들 조차도 결국 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맴을 도는 데에서 그쳤다. 내 글들은 어떤 구체적인 욕망도 가지고 있질 못했고(심지어 더 많은 독자들을 만들어 더 좋은 수입을 얻겠다는 욕심조차도 없었다), 일말의 예술적인 철학이나 목적도 없었으며, 종종 재치있다거나 신선하다는 평을 들었던 일종의 특이성들도 점점 마모되어 가고 있었다. 소설이나 에세이에서도 그랬는데 하물며 비평이나 번역에선 말할 것도 없었다. 마감을 때우듯 지나고 나면 또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될 뿐이었다. 내가 도시에서 느꼈던 무기력과 우울함은 재능이라고 생각했던 스스로의 우월함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볼 자신 없는 나약함에서 왔던 것이라고, 확언한 적 없었지만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유언 같은 이 책을 남겨둔 이름 모를 작가는 스스로 그 지루함을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그녀는(책자 뒤편의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을 보고 작가가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작업을 대하는 태도와 독자를 대하는 태도를 분명히 했고, 그 그대로 그녀의 작업들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대 작가의 입장으로 나를 비교하면 나는 결국 작가라는 수식으로 과장한, 몇 개의 낱말을 파는 장사꾼에 지나지 않았다. 파지 같이 방치된 이 종이쪽에서 나는 그것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페이지들은 작가의 낙서였다. 몇 개의 직선들이 두 면으로 펼쳐진 페이지를 가로질러 지나갔고 서툴게 스케치 한 얼굴 드로잉도 둘 있었다. 숏커트를 하고 담배를 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자의 옆 얼굴과 어딘가 초점 없는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선이 거친 남자의 얼굴. 남자의 벌린 입에서 도드라진 썩은 치아들이 특히 강조되어 그려졌다. 구매목록 같이 보이는 단어들이 앞에서와 같은 글씨체로 페이지 여기저기에 산발해 있었고, 펜으로 마구 눌러 계산 없이 그린 사각형들이 페이지의 가운데에 있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흔한 노트패드의 한 장을 찢어 붙인 것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 무질서의 와중에도 나는 작가가 남겨둔 의미를 파고들고 싶었고, 그것이 그저 우연들의 나열이거나 무의식적인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우연이 암시하는 규칙성을 발견하고 싶었다. 책자에 대한 처음의 호기심은 이제 그 목적이 분명해졌다. 지금까지 다만 네 쪽의 페이지를 봤을 뿐인데, 이제 이 발견은 내가 이 작은 마을로 도피한 이유가 되어있었다.

 

 

 도시를 떠나있던 그 시간만에 이 시골의 풍경에 젖어 감수성이 유난해져 그런 것일까. 그러나 방금전까지도 습관적으로 해놨던 메모와 스케치 따위를 봐도 그런 것 같진 않았다. 내가 남긴 메모와 스케치들은 변함 없이 지루했다. 어차피 이 마을은 떠날 곳이었고, 어떤 투명한 목표로 굳이 이곳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애초에 나는 변화를 기대하고 이곳으로 숨어들지 않았다. 이 작은 마을이 나에게 여유와 도피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어떤 새로운 발화를 가져다주지는 않았었다. 이 의외의 발견을 제외하고는. 내가 유난한 것이 아니라, 이 발견이 유난한 것이었다. 나는 이 발견에 대해 비루한 운명론까지 들먹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가끔 그런 게 필요할 때가 있었다. 운명 같은 걸 꺼내면서까지 당위성을 찾는 건 낯간지럽지만, 벌어진 일들이 어차피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고 생각하면 실수나 사고 같은 것들은 금세 무력해지고 말았다. 3년을 만났던 A와의 일이나, 억지로 끌려갔던 하이킹에서 골절됐던 다리나, 무심결에 세탁기에 넣어버린 캐시미어 같은 것들이 그랬다. 이제껏 나는 인과에 책임을 묻기 귀찮은 일들을 운명이라며 축약해왔다. 같은 이유로 이 발견을 운명적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무언가들을 명사화 시키려는 습관적인 강박이 적당한 설명을 찾질 못 했기 때문에 별 다른 길이 없었다.

 

 

 나는 그것이 죽은 나체인 줄 알았다. 두번째의 스냅이었다. 얼핏 나는 욕조마저도 관으로 보았는데, 그건 꼭 죽은 것 같이 보이는 힘 빠진 몸이 잠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어진 입술, 힘 없이 풀어진 손깍지, 뿌옇게 떠있는 몸, 감정을 벗어난 고요한 표정이 마치 편안히 죽은 이의 데드마스크처럼. 나는 밀레이의 오필리어가 마지막으로 지었던 그 표정을 떠올렸다.

 물에 젖어 제멋대로 향한 짧고 검은 머리카락과 짙은 눈썹, 다부진 턱은 영락 없이 성징을 겪지 않은 연약한 소년의 흔적이었는데, 옅게 진 가슴골의 그림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것을 정말 사춘기의 아이로만 보았을 것이다. 반만 그늘진 상반된 명암의 얼굴까지도 막 현신한 야누스 같았다. 죽음의 이미지는 점점 그것 자체를 넘어 성스러움을 풍겼다.

 욕조는 이제 관이 아니라 보호막처럼 보였다. 그것은 성인의 후광 같이 보이기도 했고, 수녀의 머리싸개가 늘어져 퍼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욕조와 물이 그리는 곡선은 영락없는 이콘의 프레임이었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불편하다. 단순히 내 손에 낯설어서가 아니다. 이제껏 내가 본 사진들은 노골적인 권력을 담고 있었다. 그건 타임이나 라이프 지의 표지에서도, 내셔널그라픽에서도, 증명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파티에서 막 찍어댄 스냅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카메라 앞에서 긴장 하고 있고, 장면은 개입된 촬영자의 선택을 객관성으로 포장한다. 그리고 관찰자의 관음성을 보는 사람의 시각인 것처럼, 착각을 조장한다. 현상을 프레임에 담아 피사체를 대상화 시키는 그 권력적 작동들은 내가 좋아하는, 글이나 그림이 가진 주관적 재편성과는 명백히 다른 속성을 가진다. 다르다.

 

 

 도록의 사진들은 이것을 벗어나 있었다. 

 

 

(작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