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lle Lee
정조란 게 다 무에요. 요즘날 저자에서 사기 걸맞기론 정조만한 게 또 없지요.
한낱 창기가 정조를 논한다고 노여치 말고. 응응 말이야 말이지만은 실지로 우리만큼 정조가 어울리는 치들이 없거든. 그저 얌전한 여편네들이 방안에나 앉아서 오냐오냐 할 줄로만 알지, 거 맘 속엘 뉘 담아두고 있는지는 서방들이 영 까막눈이거든. 정조란 게 별 게 정존가? 말하자면야 기생들이야말로 정조를 늘 간직하고 있단 말씀이야. 이 서방님, 저 서방님 귀염을 떠는 게 샌님들에게는 여기저기 웃음으로 값 싼 아양이나 파는 것 같겠지마는 우리네 생리로는 참으로 한 서방님 서방님마다에 정조를 주는 것이거든. 이 품에서 저 품으로 나비 날 듯 옮겨다니면서 이 품에 안겨 저 품을 기억하지는 않는단 말씀이외다. 바른체 하고 속으로 외간 이랑 통정하는 속 모를 여편네들보담이야, 지금날에나 와선 정조란 기생들에게나 어울리는 말 아니겠수. 조선 팔도 널린 열녀문 하다하다지만, 그네들 속은 모를 일이지. 그렇지 않소? 무슨 내 변명이 아니라, 정조라는 것의 값어치는 그렇다는 것이지. 맘 씀씀이에 달렸다 이말이오.
요 정조라는 게 내 맨첨부터 말한 것처럼 값어치야 볼 것 없지마는, 그래도 사람 마음이 간사한지 남의 정조를 맡아두는 것은 사뭇 즐거운 소일이야요. 나야 이 정조 저 정조 마음껏 지키며 늘어지게 논다지만, 서방들은 아니 그런 법이거든요. 해뜰녘에야 지쳐 들어온 나에게, 밤낮으로 나를 찾던 그이들이 측은히 안겨들면 물 먹은 솜 같던 몸에서도 모성 같은 힘이 절로 나고 또 새로운 정조가 샘솟는 것이 아니겠어요? 금가락지, 진주나 비단 필필이가 주는 기쁨도 미천한 규수에겐 분하지만 인심이야 더 재미있는 것이니까. 서방들의 이런 정조는 하등 돈 푼이 안된대도 기집으로서 위신은 서는 일이거든. 이런 서방 저런 서방의 고런 정조들을 망중한, 오수라도 청하며 셈하고 있노라면 그네들에게 다한 내 정조가 열녀문이 몇개라도 할 말이 없음이오. 응응 그렇다고 정조를 잊어가며 서방들을 그리는 건 아니니 그럴 걱정이덜 말아요.
상은 그런 사람이었지요. 상은 나를 얼마나 아꼈던지, 절친한 친구들에게 한 순배씩 권하질 않겠어요. 나는 그때 그가 실지로 나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느끼었습니다. 그이들이 간혹 얼마씩 지전을 쥐어주면 조르르 상에게 가 고것들을 펼쳐놓고 아양을 태웠지요. 그럼 그는 세상 없이 그윽하게 나를 보며 얼르는 것이었습니다. 병색이 가시고 봄마냥 피어나던 그의 얼굴! 상은 내 정조를 어느정도 담보하고 있는 이였지요. 우리의 정조에 대한 쌍방의 약조는 그 얼굴에 이미 완성이 되었었다 이말이오. 역신을 한낱 오입쟁이로 취급한 처용의 치사함 따위는 이제와선 이미 구차한 민담 따위가 아니겠어요? 이를테면 상과 나의 정조는 하릴 없는 세간의 풍문이나 고 옛날의 구차한 민담보다 숭고함으로는 상열지사의 으뜸으로 치뤄져야 구색이 맞지요.
만첩 반상도 질리듯이, 혹 상을 살림에서 물릴 때면 또 그렇게 숫기 잃은 개모냥 어디를 회회하다 돌아오는 그 모냥이 속으로 자뭇 측은하여 뜨끈한 것이, 나도 상이 돌아올 줄을 알았고 상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모양을 재미지게 연극했지요. 항간에는 상이 이 금홍이 때문에 가이 잃고 천재를 잃었다 뭐다 시끄러웠으나 그는 우리의 연극 중역에 흥미를 잃지 않았어요. 그런 배포는 정조만큼이나 너른 이였지요.
이제와서야 다 무엇이냐 하면 하등 쓸 일 없는 말이지만, 여튼지 내 정조는 그러하다 이말이요. 동정 산 적도 없거니와 가이 잃은 적도 없단 말이지. 그걸 알아주는 이가 상 하나 아니었나 생각하면 자뭇 세상이 그렇게 천박할 수가 없소만 그거야 열녀 금홍이를 몰라주는 세상 탓이지. 금홍이와 상, 그리고 많은 서방들에겐 내가 바친 정조들이나 내가 수집한 정조들이 저기 쌓인 진주알이나 비단옷들보다 영롱하게 여겨지고 있단 말이외다. 그것들은 금홍이란 이름이 인구에도 잊혀질 때에도 열녀문처럼 든든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