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방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버려진 밥상을 하나 주웠다. 낡고 작은, 사실 낡았다기 보다는 더 이상 쓸 수 없어진 소반이었다. 명절날 가는 시골집에서나 봤을법한 자개가 얹힌 까만 상인데, 힘을 주어야 열리는 굵은 철사 다리가 그나마도 두 개 밖에 안 남아 쓸모가 없는 폐품이었다.

 

 

 아무리 술김이라도 왜 그것을 모셔다 방으로 왔는지 알 수가 없다. 간혹 빈난한 자취에 그럭저럭 어울릴 것 같은 가구들이 버려져있을 때, 몇가지의 가재들을 그렇게 마련하긴 했었지만 이렇게 영 쓸모 없는 폐품을 모으는 취미는 이제껏 없었다. 잔뜩한 싸구려 자개로 박제된 십장생이 그 술기운에 다정해 보였을 리도 없다.

 

 

 이부자리도 못 편 채로 뻗어 자다 일어나서, 머리맡에 놓인 이 난감한 조우에 한동안 기운을 안 차리고 골몰해있었다. 있는 살림도 내버려야할 판국에 고물수집이라니. 술 들고도 안 부리던 객기가 뒤늦게 드나 눈만 꿈뻑이며 맨바닥에 계속 누워만 있었다. 멀쩡한 세간들도 남겨놓고 떠나는 재개발촌이라 들이고 싶던 것들이 많아도 짐만 늘까 참아왔는데 하필이면 들인 것이 고물로도 안 쳐 줄 다 부서진 밥상이라니.

 

 

 평소 같으면 도서관에 가 있을 시간인데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 망가진 밥상과 한참을 나란히 누워있었다. 어제의 술이 과하긴 과했었나.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싶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곧 살 방도 없어지고 변변찮은 본가엔 면목도 없으니 집으로 아예 내려가 고시고 뭐고 그만두고 농사나 돕겠다고, 후배들 앞에서 윽박지르듯 장담한 자리었다. 반은 진심이었다. 빈말로라도 조금 더 힘 내 보자고, 아직 더 해볼만 하다고 으레 쏟아질 안주 같은 위로를 가늠하며 말을 꺼냈던 것인데 정작 돌아오는 건 그네들의 한숨과 동의였다. 저라도 그러겠다는, 한 두 학기만 더 견디면 떨어질 학사 때문만 아니라면 다 팽개치고 그러고 싶다는. 철거촌에서 나가자니 보증금은 날 곳이 없고, 취업을 담보하자니 집에는 면목이 없는, 모두가 절체의 나날이었다. 다음주면 간판을 내린다는 동네 초입 포장마차에서 우리는 나와 인적 없는 각자의 골목으로 방으로 새어 헤어졌다.

 

 정말 다 치워버리고 어제의 그 신소리처럼 집에나 내려갈까. 소반은 모서리의 검은 칠이 군데군데 터져 점점 더 볼품 없었다. 부산한 자개들을 아무 생각 없이 손톱으로 긁어내리는데 쉽게 덜렁거린다. 이미 오래전에 떨어져나간 자리들엔 본드자국만 남아있다. 사슴 뿔부터 자개를 살살 긁어내 사슴을 하나 떼어내보니 재미가 붙었다. 그래 어차피 다시 내다 버릴 거라면 이런 재미라도 훌치는 게 나쁘지 않다 싶었다. 여전히 오늘 하루쯤 더 낭비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싶기도 했다. 구름이 좀 큰 편이라 애를 먹었지만 부서뜨리지 않고 떼냈고 이미 몸이 날아가고 없는 학은 다리만 두 짝 남아있었다. 낡은 세공이라 남은 자개들을 떼어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붙어있던 자개들을 다 떼내고 모아 절그럭대니 그것도 나름대로 운율이 있는 것 같아 한참을 또 그러고 있었다. 칠 벗겨지고 다리짝 없는 밥상이야 버린다고 쳐도 투박해도 맵시런 조각 가진 자개들을 굳이 버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쌓아도 보고 떨어뜨려도 보고 그 잘그락거리는 맛에 실실 웃음까지 났다.

 

 

 하루살이 집 이고가듯 빠져나간 사람들일텐데, 진작부터 서지도 못한 소반을 이제껏 부둥켜있다 버리는 심보를 모르겠는 건 아니겠지만 분명히 알 것 같지도 않다. 어디 걸쳐라도 썼다면 모를까 아마 다리 두 개 남은 밥상은 하루살이의 미련 같은 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미련보퉁이를 굳여 지고 온 내 속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밖으론 벌써 짧은 해가 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냉한 바닥에 누워있었으니 지쳐서 이것도 그만하고 일어나려는데 작은 방에 틈 없이 들어찬 가구들이 새삼 보인다. 책상과 옷장과 신발장과 부엌과 밥상과 이부자리와 그밖에도 구질구질한 세간들. 이 작은 벽 안에 나는 또 벽을 치고 벽을 치고 벽을 치고. 버릴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구색갖춘 생활이 될 줄 알고 열심히 주워다 모았다. 하다못해 이젠 그게 미련함이 되어버리고.

 

 

 소반 다리 두개를 펼쳐 바닥에 버텼더니 그럭저럭 기대 앉을만한 부목이 된다. 호두알을 굴리듯 손 안엔 자개들을 놀리고 밥상에 모로 기댔다. 한조막 남은 빛이 내놓인 벽 없는 방을 그나마 잇고있었다. 비장하지도 않고 실망스럽지도 않았다.

 

 

"예. 엄마, 나에요. 나 내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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